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강 방어선 전투 (문단 편집) ==== 맥아더 원수의 한강 방어선 시찰 ==== [[맥아더]] 장군이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였다. 29일 아침에 수원비행장에 착륙한 전용기 '[[바탄 죽음의 행진|바탄]]'에서 내린 맥아더 장군은 수원농업학교에 설치된 ASCOM(미 전방지휘소)에 들른 후 수원국민학교에 설치된 [[대한민국 육군본부]]에 가 [[채병덕]]의 보고를 듣고 나서 직접 한강 방어선을시찰하게 되었다. 이때 사령관 [[김홍일(군인)|김홍일]] 소장은 작전지휘차 부재중이어서 참모장 김종갑 대령이 통역을 겸한 안내를 맡게 되었다. 그리하여 헌병사령관 [[송요찬]] 대령과 공군 헌병대장 김득룡 중령의 경호 아래 맥아더 원수 일행은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게 되었다. 당시에 맥아더 원수를 안내하였던 김종갑 [[대령]]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데 [[https://www.macarthurmemorial.org/|미국 맥아더 기념관]]에 문의한 결과 맥아더 장군과 국군 병사의 일화는 맥아더 회고록과 미국의 6.25 전쟁 전사 등 맥아더 개인 및 미국 공식 기록과 자료에서 찾을 수 없는, 다시 말해 진실임을 입증할 명백한 근거가 부족한 일화로 신빙성 논란이 존재한다. ||그때 내가 안내를 맡게 된 까닭으로 [[원수(계급)|원수]]와 한 차에 동승하게 되었는데, 차량은 검은 세단이었으며, [[운전병]] 옆의 앞 좌석에는 미 [[고문]]단장 라이트 대령이, 그리고 뒷좌석에는 원수와 미 극동군참모장 [[에드워드 알몬드|알몬드]] 소장, 그리고 내가 자리를 잡았다. 그리하여 시흥에서 영등포로 북향하여 우신 초등학교의 [[수도기계화보병사단|수도사단]] 본부에 들렸다가 사단장과 함께 고개를 넘어 동양맥주공장 부근[* 현 영등포공원 자리]에 이르니, 적의 120㎜ 박격포탄이 난무하기 시작하였는데, 길 옆에 서있는 [[버스]] 1대가 포탄에 맞아 박살이 났다. 이에 라이트 대령이 「위험하니,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?」하고, 원수에게 권유하였으나, 원수는 단호히 「아니, 나는 한강을 보아야겠다 (No. I want to see Han River)」하고 [[한강]]행을 강행하였다. 그러나 포탄의 집중으로 더 이상 차량의 진행은 위험하여 부득이 차에서 내려 옆의 맥주공장으로 잠시 대피케 되었다. 적의 [[박격포]] 사격이 뜸해진 틈을 타서, [[제8보병여단|제8연대]] 병력 일부가 진지를 점령중인 공장 옆의 언덕위에 올라가, 쌍안경으로 한강을 관찰하였다. 이때 원수는 그곳의 개인호 속에서 진지를 지키고 있던,[[중사|일등중사]]의 계급장을 단, 어느 병사를 보자 가까이 다가가서 「자네는 언제까지 그 호 속에 있을 셈인가?」하고 물었다. 이에 그 [[중사|일등중사]]가 대답하기를 「각하께서도 [[군인]]이시고 저 또한 군인입니다. 군인이란 모름지기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. 저의 상사로부터 철수명령이 내려지든가, 아니면 제가 죽는 그 순간까지 이곳을 지킬 것입니다」라고 하였다. 이 대답을 나의 통역으로 전해 들은 원수는 그 기개에 크게 감동한 듯, 병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고 나에게 다시 「그에게 말해다오. 내가 곧 동경으로 돌아가서 지원병력을 보내줄터이니, 안심하고 싸우라고」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.|| 그 후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는 도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[*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[[제2차세계대전]] 때의 태평양 지구 사령부이다. 6.25의 연합군(UN군) 사령부는 7월 7일 도쿄에서 창설됐다.]에서 본국과의 극비 텔레타이프 회의(타이퍼는 타자기. A와 B가 텔레타잎을 쓴다면 A에서 메세지를 타이프로 쓰면 무선으로 정보가 상대의 기계로 가서 영사기로 상영되고 똑같은 방법으로 대답.)를 통해 [[일본]]의 안전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[[주일미군]]의 파병을 허가하였다. 맥아더 장군은 또한 이날 낮 [[이승만]] 대통령에게 현재까지의 패전에 대한 책임을 물어 [[채병덕]] 육군 총참모장의 해임을 요구했다. 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어 그를 해임했고 후임으로는 그날 미국에서 귀환한 채병덕 총장의 후배인 [[정일권]] 소장을 임명하였다. 이 명령은 30일 0시 효력을 발하였다. 적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. 다만 적의 포격은 계속되었다. 한편 이날 [[한강]]이북의 아군은 대부분 도하를 완료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